

지혜의 숲
척박한 몽골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다
글로벌 숲탐방 원정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3시간이면 도착하는 몽골.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가득했다. 울란바토르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광활한 자연이 펼쳐진 신비의 땅. 하지만 기후변화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이곳을 가장 먼저 덮쳤다. 지난 8월 7일부터 11일까지 '2023 글로벌 숲탐방 원정대 프로그램'에 참여해 아름다운 자연 뒤에 숨겨진 몽골의 기후위기 현장을 찾았다.

본격적인 첫 일정은 '한-몽 그린벨트 프로젝트' 녹화사업소 방문이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130km를 달리면 나오는 룬솜. 지평선까지 이어진 초원에는 하얀 게르(천막)와 풀을 뜯고 있는 말과 소, 양 떼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언덕과 맞닿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 몇 점이 하얀 게르와 환상적인 데칼코마니를 이뤘다.
전날 내린 비로 혹여 바퀴가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대형버스는 거침없이 넓은 평원을 가로질렀다. 40여 명의 초·중·고 대원과 지도교사들은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끝이 안 보이는 초원을 달렸다.
한참을 가다보니 태극기와 몽골 국기가 나란히 그려진 팻말이 보였다. 우리나라 산림청과 몽골 정부가 '한-몽 그린벨트 프로젝트' 일환으로 조성한 '툽 아이막 룬솜 사업소' 입구였다.

빽빽하게 심긴 수십만 그루의 나무들이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몽 그린벨트 사업단 이성길 단장은 입구에 서서 대원들을 환하게 맞아줬다.
우리나라 산림청과 몽골의 인연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림청은 1998년 몽골 자연환경부(현 환경관광부)와 산림협력 양해각서를 체결, 사막화 방지에 협력해왔다. 200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몽 그린벨트 프로젝트' 1단계 사업을 시작해 3,000ha이 넘는 면적을 조림하는 데 성공했다. 양국 사업단은 2단계까지 마치고 작년부터는 3단계 사업을 추진 중이다. 3단계 사업으로는 몽골의 지역거점 양묘장인 우브루항가이, 훕스골, 세렝게 3곳에 자생 수종을 육성하고 자체적으로 종자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세 차례에 걸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나무를 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몽골은 전세계 어느 국가보다 기후위기를 직격탄으로 맞았기 때문이다.
몽골 자연환경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세계 평균기온이 섭씨 0.7도 상승하는 동안 몽골은 무려 2.1도 상승했다. 사막화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1990년 전 국토의 40%가 사막이었는데 지금은 80~90% 가까이 늘었다. 지난 30년 사이에 사라진 강만 해도 1천 곳이 넘는다. 작은 나무 한 그루마저 귀한 상황이다.
이날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도 산자나무와 노랑아까시, 포플러 나무, 비술나무 등이 푸릇푸릇한 이파리를 뽐내고 있었다. 모두 건조하고 추운 지역에서 잘 견디는 수종이다. 일부 나무들은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높이 자랐다. 대원들은 산자나무에 맺힌 노란 비타민 열매를 따서 맛보며 사업 성과를 실감했다.
이후 대원들은 조림지 인근에 자리한 혼농임업 사업장에 들렸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박과 호박, 오이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쌈채소 새싹들도 보였다. 혼농임업을 확장시켜 생태계 순환을 만들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한-몽 그린벨트 프로젝트' 3단계 사업의 일환이다.
산림청은 인근에 교육센터를 개소해 작물 경작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교육센터를 통해 지역 주민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새로운 일자리 창출까지 도모하고 있다. 양묘와 조림 기술뿐만 아니라 'K-농업'까지 전수한 셈이다. 대원들은 척박한 몽골 땅을 푸르게 물들인 산림청의 기술력과 끈기에 감탄했다.


이튿날 대원들과 지도교사들은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약 8km 떨어진 '한-몽 우호의 숲'으로 오전 일찍부터 발걸음 했다. 2017년부터 5년간 추진된 도심숲으로 '한-몽 그린벨트 프로젝트' 2단계 사업으로 양국 간 우호를 다지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모랫바람만 휘날리던 황무지는 각종 동물과 곤충이 깃드는 아름다운 숲이 됐다. 최근에는 놀이터와 체육시설, 자생수목원, 바닥분수 등을 조성해 지역주민은 물론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산림휴양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성길 단장의 설명을 들은 대원들은 2인1조로 짝을 지어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토양이 거칠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흙속에 파묻혀 있던 바위와 돌멩이를 리어카로 여러 차례 실어 날라야 할 정도였다. 대원들은 땅을 개간한 후 퇴비와 흙을 잘 섞어 묘목의 뿌리를 채웠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뿌리를 덮은 토양을 다지니 제법 모양새가 나왔다.
정성스럽게 심은 묘목은 골담초와 자작나무, 소나무, 인동덩굴이다. 춥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견딜 뿐 아니라 도심숲에도 어울리는 수종이다. 가냘픈 묘목이 땅에 뿌리를 딛고 선 모습이 새삼 대견해보였다.
몽골에서 나무를 심는 과정도 녹록지 않지만 사후관리는 더 어렵다. 한국에서 동일한 수종을 심었을 때보다 몇 십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척박한 토양과 적은 강수량으로 나무가 자라기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 여기에 영상 30℃에서 영하 40℃까지 오르내리는 혹독한 기온까지 겹치면서 조림 난이도는 훌쩍 높아진다. 몽골의 기후와 환경을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조림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축떼도 변수다. 말과 소, 양, 염소 등 가축들은 조림지의 불청객이다. 한-몽 그린벨트 사업 초반에 가축들이 넘어와 묘목의 잎과 줄기를 모조리 갉아먹어 공들여 심은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한 그루를 심더라도 정성스레 가꾸고 보살펴 살아남게 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나무심기로 온 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대원들의 얼굴에는 묘묙들이 자라 울창한 숲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역력했다. 대원들은 몽골 사막화를 막기 위해 계속해서 앞장서겠다고 입을 모았다. 10년, 20년 뒤에 이곳에 다시 찾아와 어떻게 변해있는지 보겠노라고 기약하는 대원도 여럿이었다. 대원들과 함께 땀 흘린 지도교사들에게도 각별한 시간이었다. 이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숲을 가꾸고 지켜나갈 글로벌 인재로 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대원들은 테를지국립공원 방문, 몽골 문화유적지 답사, 유목민 생활체험 등 남은 일정도 성실히 임하며 ‘그린 레인저’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탐방 기간 동안 대원들은 네 개 조로 나눠 사막화 해결방안 등을 모색했다. 대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발적으로 새벽 늦게까지 발표를 준비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 대원들은 한 목소리로 기후위기 선언문을 제창하며 기후위기 시대의 글로벌 리더로 한뼘 더 성장했다.

이번 몽골 탐방을 이끈 김동균 단장은 교사이자 숲 활동가다. 김 단장은 옥계중학교에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번 몽골 글로벌 숲탐방 원정대를 통솔하면서 사진과 영상촬영까지 책임진 김 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퇴임 눈 앞에도 여전한 ‘숲사랑’
한국숲사랑청소년단 김동균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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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숲사랑청소년단 활동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
A. 한국숲사랑청소년단에 처음 발을 들인 시기는 김천생명과학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담임하던 2012년이었다. 학업에 치인 고3 학생들의 심리안정과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그해 학생들을 설득해 학급전체를 대원으로 등록시키고 국립횡성숲체원에 1박2일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 학생들도 직접 숲에 가서 흙을 만지면서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진평중, 옥계중 등을 거치며 지도교사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운영기획위원장, 이사회 이사, 경북지역회장 등도 역임하면서 단체가 성장하도록 힘을 보태고 있다. -
Q. 이번 ‘2023 글로벌 숲탐방 원정대’는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재개됐다.
A. 오랫동안 고대했던 만큼 더 각별했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해외 탐방이 다시 시작됐다는 사실 자체로 무척 기뻤다. ‘글로벌 숲탐방 원정대’로 학생들과 함께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매번 새로운 것 같다. 특히 올해는 미세먼지와 황사 등 기후위기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가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절박함을 가지고 참여했다. 숲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 시기에 몽골을 방문해 나무를 직접 심을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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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2018년에도 몽골을 방문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일정이 달라서인지 예전과 다른 느낌이다. 5년 전에는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나무를 심었고, 이번엔 ‘한-몽 그린벨트 사업단’ 프로젝트 설명을 듣고 도심숲에 나무를 심어보는 일정이었다. 이번 일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조성한 조림지에 나무들이 성공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먼 타국까지 와서 애쓰는 사업단 관계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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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원들이 직접 나무를 심었다. 어떤 유익이 있나?
A. 산림의 중요성은 익히 들었겠지만 직접 나무를 심어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직접 나무를 심어보는 경험을 하면서 자연의 순기능을 이해하고 건강한 인성을 함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산림교육을 통해 사회성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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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국숲사랑청소년단 지도교사를 해 오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A. 수업시간에 열의가 없고 활동에도 소극적이었던 대원들이 눈에 띄게 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부터는 학부모와 소통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활용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놀랐다. 단순히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까지도 산림교육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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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A. 이번 몽골 탐방에 참여한 학생 모두 사막화 방지에 기여했다는 자긍심을 갖고 ‘그린리더’로서 푸른 지구를 만드는 데 앞장서면 좋겠다. 또 코로나19도 종식됐으니 전국에서 더 많은 학생들이 대원으로 입단해 나무 한 그루의 소중함을 배우길 기대한다. 숲사랑 정신이 널리 퍼져 미래의 숲을 가꾸고 지켜나갈 인재를 양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